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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애슬레틱] 플로리안 비르츠 성장기: 거실에서 출발한, 패배를 견디지 못하는 축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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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디 애슬레틱] 플로리안 비르츠 성장기: 거실에서 출발한, 패배를 견디지 못하는 축구 소년
 
Sebastian Stafford-Bloor
June 16, 2025 1:15 pm GMT+9
 
 
 
“플로리안 비르츠에겐 문제가 있다.” 독일 축구 잡지 11Freunde의 보도였다. “그는 이미 인생 최고의 골을 넣어버렸다.”
 
2019년 12월이었다. 16세의 비르츠에게 분데스리가 데뷔는 아직 몇 달이나 남아 있었다. 쾰른 U-17 팀 소속으로 부퍼탈 SV를 상대하던 때였다. 그는 킥오프 패스를 받아 센터 서클 안쪽에서 공을 터치한 뒤 곧장 상대 골키퍼 머리 뒤로 슛을 날렸다.
 
걸린 시간은 5.05초였다.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 이적료가 될 가능성이 있는 1억 3,630만 유로(1억 1,600만 파운드, 1억 5,700만 달러) 가격표의 리버풀 이적 이전부터, 이미 그 골이 비르츠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 골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했죠.” 몇 달 전 쾰른 U-17 팀을 독일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끈 당시 비르츠의 지도자 마르틴 헤크 감독은 말한다. “그때부터 플로리안은 점점 더 큰 선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축구가 단순히 경기하고 훈련하는 것만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을 겁니다. 그 시점 이후로 그의 커리어는 더 공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는 위대한 재능(Jahrhunderttalent)이었다. 세기에 단 한 번 나오는 선수였던 것이다.
 
비르츠는 쾰른에서 20km 떨어진 인구 5만 명의 마을, 라인란트 풀하임에서 자랐다. 그의 집에는 비디오 게임기와 TV가 있던 때가 드물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비르츠는 종종 친구들의 집에 가서 축구를 보곤 했다.
 
여름이면 플로리안과 부모님, 누나 율리아네, 그리고 그 외 여덟 명의 이복 형제자매들이 모두 함께 밴을 타고 캠핑을 떠났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에겐 축구가 있었다.
 
현재 프라우엔 분데스리가(*역주 - 여자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 소속 프로 선수인 율리아네는 비르츠보다 18개월 먼저 태어났다. 그들은 캠핑장 주변 좁은 공간에서 서로 공을 가지고 겨루거나 다른 아이들과의 경기에 함께 뛰곤 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실 바닥에는 늘 축구공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율리아네와 플로리안은 늘 카펫 위에서 1대 1 승부를 해댔다. 장식장과 탁자가 그들의 골대였다. 율리아네가 독일 U-15 여자 대표팀으로 데뷔했을 때 플로리안은 관중석에 있었다. 2025년 초, 둘 다 나란히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레버쿠젠에서 재활 훈련의 일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 보자. 집안에선 와인잔이 깨지기 일쑤였고, 플로리안은 식사 시간에 접시를 들고 식탁으로 향하면서도 발밑에 공을 두고 있었다.
 
그의 미래 감독이 되는 바이어 레버쿠젠의 헤라르도 세오아네는 2021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점은, 그가 파이널 써드에서도 매우, 매우 침착하다는 것이죠. 그는 무쇠 같은 감각을 가졌고,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비르츠의 말에 따르면, 그런 자질은 (추정컨대) 오래된 거실 카펫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024년 유럽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Suddeutsche Zeitung의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현대판 홈 오피스 버전의 길거리 축구 선수인가요? 말하자면, ‘거실에서 태어난 축구 선수’말이죠.”
 
비르츠는 대답했다. “네, 정말 많은 걸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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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쾰른 U-17 팀 시절의 플로리안 비르츠(왼쪽, 흰색 유니폼) (Alexandra Beier/DFB/Getty Images)
 
여섯 살 무렵, 비르츠는 지역 클럽 SV 그륀바이스 브라우바일러에 입단했다.
 
그의 아버지가 클럽의 코치였고, 오랜 기간 유소년 총괄을 맡고 있었다. 현재 비르츠의 아버지 한스 비르츠는 브라우바일러의 회장이자 플로리안의 에이전트까지 맡고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강압적인 부모가 아니었다. 그는 아들과 딸에게 축구를 강요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비르츠는 2022년 11Freund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놀면서 축구를 즐기는 것이 전부였어요. 우리 둘에겐 주말마다 아버지와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그저 멋진 일이었죠.”
 
“아버지는 결코 야심차게 저희를 키우시지 않으셨어요. 방과 후에 무조건 축구를 위해 저희를 밀어 넣지도 않으셨죠. 다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플로리안의 어머니 카린도 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멤버 중 하나다. 전 핸드볼 선수이자 코치인 그녀는 어릴 적 독일 최고의 핸드볼 스타 중 한 명인 율리안 코스터를 발굴했다. 그리고 현재 카린과 한스 부부는 축구 경기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율리아네와 플로리안이 경기에 나설 때면 가족들과 함께 거의 항상 관중석에서 그들은 자식들을 응원한다.
 
그의 전 U-17 팀 감독 마르틴 헤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플로리안의 성공 비결은 그의 부모님이죠. 경기장 밖에서의 그는 내성적이고 삶의 속도도 느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은 어린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것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려 노력하셨어요."
 
“한번은 독일 스포츠 빌트(Sports Bild)가 2028년 미래 국가대표 예상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봤어? 너 2028년엔 국가대표 선수래!’라고 그에게 말했죠. 그러나 그는 그게 어디서 나온 얘긴지 언론사의 이름조차 몰랐어요. 독일에서 가장 큰 언론인데 말이죠.
 
"당시까지 그는 휴대폰도 없었습니다. 그의 성공에는 가족들의 보호가 큰 지분을 차지한겁니다. 저는 비르츠가 프로 축구로 향하는 급행 열차를 타는 대신 건강한 길을 택할 수 있도록 도운 그의 가족들에게 늘 감사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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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라네 비르츠(28번)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뛰고 있다 (Ina Fassbender/AFP/Getty Images)
 
 
그렇게 성장한 비르츠는 2011년에 가까운 쾰른 아카데미로 입단했다. 헤크 감독은 처음 그의 플레이를 봤을 때를 기억한다. 비르츠는 눈에 띄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일반적인 수준으로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헤크는 말한다. “저는 플로리안이 제 U-17 팀 선수가 되기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U-10~13 팀에서 뛸 때, 그를 3년간 지도했던 코치가 제 절친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는 주목을 해야만 할 정도로 정말 뛰어났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를 만나기 5~6년 전부터 그를 알고 있을 수 밖에요."
 
“15살 때부터 그는 이미 분데스리가 프로 선수처럼 플레이했습니다. 단순한 기술이나 기량의 얘기가 아닙니다. 머리 속으로 축구를 펼쳐나가는 역량이 말이죠. 그는 체스를 두듯이 경기했고, 유소년 선수에게서 찾아 보기 힘든 수준의 플레이를 구사했습니다. 패스를 한 후에 2차, 3차 전개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는 거죠.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제게 ‘플로리안 비르츠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가 제가 본 남녀노소 모든 축구 선수 중 가장 강한 승부욕을 가졌다고 말하겠습니다. 그의 승리에 대한 욕망은 10살 때, 16살 때, 제 아래에 있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합니다. 그는 지는 걸 견디지 못해요. 그것은 처음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본능입니다.”
 
코칭을 하는 관점에서는 어려움도 있었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와 같은 선수를 굳이 바꾸려고 드는 게 가장 큰 실수입니다. 제가 그에게 가장 중요하다며 강조했던 것은, 게임에 두 가지 방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을 잃은 상황에서의 플레이도 해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나 슈팅, 패스 스타일은 손대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팀 전체가 발전할 수 있도록, 그를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했죠.”
 
그 시절의 기억은 비르츠의 승부근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팀이 이기지 못하면 훈련 세션 시간을 늘리길 원했고,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특히 부상에서 복귀했던 10대 중반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당시 긴 겨울 휴식 기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에게 복귀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조건이 있었다.
 
“저는 그가 50분만 뛸 거라고 미리 알려줬습니다. ‘플로, 보훔과의 복귀전에서 넌 50분만 뛸 거야’라고 몇 주 전부터 말해줬죠. 그는 ‘네, 감독님, 괜찮아요. 전 그냥 다시 뛰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가 경기장에 다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습니다. 경기 전 월요일에도 저는 또 다시 ‘플로, 기억해. 50분만이야!’라고 말했고,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에도 똑같은 얘기를 계속 했어요."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전이 끝나자 모두 플로가 교체될 걸 알고 있었죠. 그런데 제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제가 미워 죽겠다는 모습이었습니다. 욕을 하면서 잔디를 발로 차더니 손을 내흔들었어요. 그는 이후 5일 동안 저와 말도 안했습니다!"
 
"저는 그저 웃었어요. 결국 우리가 경기에서 이겼거든요. 팀 동료들도 웃었습니다. 그들도 어차피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았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플로리안 비르츠라는 선수입니다. 이게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그의 특별한 점이라고 저는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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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비르츠가 2019년 독일 U-17 대표팀 소속으로 잉글랜드 U-17 대표팀과 경기를 치르고 있다 (Mateo Villalba Sanchez/DFB/Getty Images)
 
 
그라운드 밖에서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사생활을 강하게 보호하려 하면서도 서포터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레버쿠젠과 독일 국가대표팀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러나 그는 쉽게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헤크는 말한다. “그는 지금도 유쾌하고 친근했던 12살의 그 소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해지고 싶어 하지 않고, 다른 선수들처럼 대중의 관심을 즐기지도 않죠. 매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프로 축구계에서 그와 같은 인성을 가진 선수들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거든요."
 
허나 그의 성장이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0년, 그 유명한 중거리 골을 넣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는 벌집을 건드렸다.
 
2001년, 쾰른과 레버쿠젠, 그리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서로의 유소년 선수를 영입하지 않기로 비공식적인 합의를 맺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뒤, 9년간 쾰른에서 뛰던 비르츠와 그의 가족은 그의 성장 행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쾰른의 1군 팀은 분데스리가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었고, 3년간 감독이 세 번이나 바뀌던 중이었다.
 
결국 결정이 내려졌다. 비르츠는 20만 유로의 이적료를 통해 레버쿠젠으로 떠났다.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프로가 되어 처음 쾰른의 라인에네르기 슈타디온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야유를 받았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그러나 이적이 결국 옳았음은 증명되었다.
 
레버쿠젠은 더 좋은 시설을 가진 더 부유한 구단이었고, 그곳엔 젊은 선수들을 신뢰하며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페터르 보츠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3개월 만에 비르츠는 1군 데뷔전을 치렀고, 2020년 5월 베르더 브레멘과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다. 3주도 채 안 되어 그는 분데스리가 최연소 골 기록까지 갈아 치웠다.
 
레버쿠젠 1군 훈련에 합류한 이후, 그는 곧장 성인 무대에 적응했고 퍼스트 터치의 감각을 키웠다. 그것은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로 만들었다.
 
2024년 SZ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 선수들과 처음 훈련하며 느낀 점은, 공을 받을 때 재빨리 한쪽으로 공을 빼내지 않으면 상대가 공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었죠. 특히 케렘 데미르바이가 ‘첫 터치를 통해 바로 움직임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그 부분을 훈련을 통해 개선하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비르츠를 상대해본 선수라면 이게 어떤 얘긴지 누구나 알 수 있다. 지난해 분데스리가에서 비르츠와 맞붙은 장크트파울리의 주장 잭슨 어바인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라인 사이 공간을 찾아내는 데 매우 뛰어나고, 파이널 패스와 슈팅도 환상적이죠. 그는 공을 받을 때 거의 멈추지 않고 방향을 바꾸면서 곧바로 슛까지 이어가는 동작을 구사합니다."
 
"그는 터치 한 번으로 수비수를 제쳐버립니다. 그게 넛멕(*역주 - 상대 다리 사이로 공을 치고 나가는 동작)이든 뭐든 간에 말이죠. 그리고 상대가 그를 다른 방향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냥 수비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가 버리는 것 같아요."
 
2022년 3월, 그가 쾰른을 상대로 한 경기 중 전방 십자 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을 때, 그래서 걱정은 더 컸다. 그가 예리한 움직임에 의존하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귀 이후가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10개월 만에 그는 사비 알론소 감독이 이끄는 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는 2023-24 시즌 레버쿠젠의 분데스리가 무패 우승과 DFB-포칼 더블 우승을 이끈 핵심 플레이메이커가 되었다.
 
알론소 감독이 이끌던 지난 두 시즌 동안, 그는 매 시즌 22골 이상에 관여하며, 2024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개인 수상은 그의 영향력을 대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소평가되었다. 비르츠는 독일 축구의 뛰어난 재능을 넘어 독보적인 존재로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발전 중이다. 관계 보호를 위해 익명을 요청한 한 프리미어 리그 팀의 스카우트는 그의 정신적 성장에도 주목한다.
 
그 스카우트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상대가 파울을 하거나 거칠게 들어올 때, 물론 그는 그런 것들도 견뎌내긴 했지만 집중력은 잃곤 했습니다. 때론 상대에게 자신의 능력으로 응수하며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죠.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이젠 그의 리듬조차 깨뜨리기 쉽지 않죠.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비슷한 대접이 기다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비르츠는 우아한 기술에다가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달고 잉글랜드 무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엘프와 같아 보이는 이 날렵한 선수가 과연 잉글랜드 축구에 어울리는 심장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선 늘 그렇듯이 회의론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바보같은 의심 따위 하지 마라.
 
 
(Top photo: Florian Wirtz in 2020; by Wolfgang Rattay/AFP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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