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미스포츠] 유럽 제한이 아니었다면,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비유럽권 선수 10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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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가리용맨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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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한이 아니었다면,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비유럽권 선수 10人.jpg [기브미스포츠] 유럽 제한이 아니었다면,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비유럽권 선수 10人

비유럽 선수 중 발롱도르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10명의 선수들
 
발롱도르는 1956년 잉글랜드의 윙어 스탠리 매튜스가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부터 줄곧 명성이 높은 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상은 ‘유럽 올해의 축구선수상(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Award)’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대륙 출신의 많은 걸출한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 진출해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이 상을 무려 여덟 번 수상했다.
 
하지만 메시는 1995년이 되어서야 발롱도르 수상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그 해부터 국적에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선수가 수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수상자를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1995년 이전이라 자격이 없었지만, 충분히 발롱도르를 받을 만했던 비유럽 선수 10명을 소개한다.
 
 

10자이르지뉴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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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르지뉴는 커리어 대부분을 브라질의 명문 구단 보타포구에서 보냈지만, 1970년대 중반 마르세유에서 짧게 유럽 무대를 경험했다. 그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할 때,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다.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4-1로 꺾었다.
 
우측 공격수로서 자이르지뉴는 상대에게 공간이나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아도 치명적인 마무리를 보여주는 선수였다. 그는 1970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 또한 1974년 대회에서도 여러 골을 기록했지만, 그해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9가린샤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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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는 펠레와 같은 반열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1962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이끌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펠레가 초반에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상대를 압도했고, 이어 칠레와의 준결승에서도 두 골을 기록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를 꺾고 브라질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커리어 대부분 역시 보타포구에서 보냈다. 만약 다른 시대에 뛰었다면 수많은 유럽 구단들이 그를 영입하려 했을 것이다. 1962년, 즉 그가 전성기에 있었던 29세 때, 발롱도르는 두클라 프라하의 요제프 마소푸스트에게 돌아갔다. 훌륭한 선수였지만, 1962 월드컵 결승에서 패한 마소푸스트보다는 가린샤가 더 빛났다.
 
 

8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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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발롱도르 수상 자격이 있었던 시대에 활약했지만, 1995년에 수상권 근처에도 들지 못한 것은 다소 불운이었다. 그해 조지 웨아가 수상했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2위를 차지했다.
 
그해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리그 32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발롱도르 최종 3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피오렌티나에서 331경기 203골을 넣은 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스트라이커였는지 알 수 있다. 강력한 슈팅력과 냉정한 마무리를 갖춘 그는 더 많은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7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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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남미의 많은 스타들과 달리, 테오필로 쿠비야스는 실제로 유럽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바젤과 포르투에서 뛰었다. 미드필더였던 그는 1970 월드컵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탈락시키며, 페루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1970년부터 1982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1978년 대회에서는 다섯 골을 기록해 득점 2위에 올랐다.
 
또한 그는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을 꺾고 페루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A매치 81경기에서 28골을 넣었다. 그의 전성기였던 1978년에는 함부르크의 케빈 키건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6카레카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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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카레카가 1982 월드컵 당시 완전한 컨디션이었더라면 브라질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첩하고, 운동 능력이 뛰어나며, 기술까지 겸비한 그는 상파울루에서 나폴리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그곳에서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다. 그는 1989년 UEFA컵과 1990년 세리에A 우승을 함께했다.
 
수비가 극도로 견고하던 그 시절, 그는 이탈리아에서 221경기 96골을 기록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60경기 29골이라는 준수한 득점 기록을 남겼다.
 
 

5소크라치스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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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치스는 우아하고 재능 넘치는 미드필더였다. 그는 경기장을 미끄러지듯 누비며, 플레이했다. 1982년과 1986년 브라질 대표팀의 중심이었고, 유럽에서는 피오렌티나에서 짧게 활약했다.
 
소크라치스는 단순히 기술이 아닌 지능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예술적인 축구 선수의 마지막 세대 중 하나였다. 그는 큰 트로피를 들어 올린 적은 거의 없지만, 그의 천재적인 패스 감각과 플레이 스타일은 그 어떤 우승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오늘날 브라질이 가장 그리워할 만한 유형의 선수다.
 
 

4지쿠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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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는 탁월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가장 재능 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그는 '우승하지 못한 최고의 팀'으로 회자되는 1982년 브라질 대표팀의 핵심이었다.
 
유럽 무대에서는 우디네세에서 짧게 뛰었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40경기 22골을 넣었다. 당시 이탈리아 축구가 얼마나 수비 중심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대단한 기록이었다.
 
지쿠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1981년 인터콘티넨털컵(유러피언컵 우승팀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 간의 경기)을 보면 된다. 플라멩구 소속의 그는 리버풀을 상대로 경기 전체를 지배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고,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됐다.
 
 

3호마리우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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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마리우는 자신의 재능만큼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야말로 걸출한 선수였다. 1994년 그의 바르셀로나 동료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만약 호마리우에게 자격이 있었다면 유력한 후보였을 것이다.
 
그해 그는 브라질을 24년 만에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였다. 1994년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꺾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바르셀로나에서 64경기 39골을 넣었다. 대표팀에서도 71경기 55골을 기록한 그는 역사적인 공격수였다.
 
 

2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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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는 단지 아르헨티나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그는 1986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고, 약체로 평가받던 나폴리를 1987년과 1990년에 세리에A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부상 중이던 1990년에도 아르헨티나를 다시 월드컵 결승에 진출시켰다. 그는 1986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상)을 비롯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했다.
 
1986년에는 이고르 벨라노프가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그의 실력은 마라도나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다음 해에는 루드 굴리트가 수상했는데, 역시 훌륭한 선수였지만, 나폴리에서 마라도나가 이룬 업적과 비교하면 마라도나가 훨씬 앞선다. 그러나 당시 발롱도르는 유럽 선수에게만 수여되는 상이었다.
 
 

1펠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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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는 창의성과 대담함으로 세계 축구를 빛낸 진정한 천재였다. 그는 남미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일이 드물던 시대에 활약했다. 산투스에서 오랜 기간 뛰었고, 말년에 뉴욕 코스모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958 월드컵 결승에서 17세의 나이로 두 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며,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시대였다면, 유럽 빅클럽들이 즉시 그를 영입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1958 발롱도르의 강력한 후보였을 것입니다. 그해에는 레이몽 코파가 수상했고, 헬무트 란과 쥐스트 퐁텐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물론 코파 역시 훌륭한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컵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 업적조차도 당시 펠레의 활약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1970년, 펠레가 다시 한번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는 서독의 게르트 뮐러가 수상했다. 그러나 그 해에도 펠레의 업적이 훨씬 더 컸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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