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어슬레틱] 2026 월드컵을 향한 여정 : 카보베르데의 기적

작성자 정보

  • 갑싼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GettyImages-2240499500-2048x1365.jpg [디 어슬레틱] 2026 월드컵을 향한 여정 : 카보베르데의 기적

원문 : https://www.nytimes.com/athletic/6714625/2025/10/14/cape-verde-world-cup-2026-inside-story/

 

경기에서

 

다일론 리브라멘토는 경기장 바닥에 쭉 미끄러졌다. 피코 로페스는 관중석에 있는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스토피라는 모두를 안았다. 스티븐 모레이라는 스스로 뭘 할지를 몰랐다.

 

"순간적으로 저는 제가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을 못했어요." 콜럼버스 크루의 수비수인 모레이라는 디 어슬레틱에 말했다. 그가 곧 충분히 그 느낌을 이해했음을 나타내는 큰 기쁨과 함께.'

 

하지만 당신이 고국을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을 막 이끌었을 때 당신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특히 당신이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지구 상 두 번째로 작은 나라에 속해 있다면.

 

아프리카 서해안에 있는 10개의 작은 섬에 52만 5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카보베르데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일을 해냈다.

 

그들은 월드컵 진출과 지난 11번의 월드컵 중 8번을 참여한 카메룬이 있는 조에서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에스와티니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이겨야 했다. 표면적으로, 월요일에 있었던 경기는 2015년이 월드컵 예선 마지막 승리였던 팀을 상대로 쉽게 승리한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전반전은 그렇지 못했다. 45분은 축구 경기를 한다기보다 온 나라가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공식적으로,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통로와 복도가 꽉 찬 걸 생각하면, 실제 숫자는 더 많았을 것이다. 표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표는 수도인 프라이아의 지하철역이나 패스츄리 가게에서 판매됐다. 몇몇은 분명 외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판매됐지만, 대부분의 티켓은 결국 카보베르데에 있는 몇몇 친척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표를 어디서 구했든 간에, 그들은 큰 기회가 날라갈까봐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긴장 상태는 리브라멘토가 루즈볼을 집어넣었을 때인 하프타임 이후 3분 만에 사라졌다. 이때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그러한 마음을 덜어 놓았다. 6분 후 윌리 세메도가 홈팀에 두 번째 골을 안길 때 그들은 이성을 막 되찾고 있었다.

 

후반전의 남은 경기 시간은 축제였다. 65분이 될 때 패스가 나오면 올레라는 소리로 화답이 되었다. 경찰들은 관중들을 흥분시키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임무보다 이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추가 시간에, 2년 전에 은퇴했지만 이번 시즌 돌아온 37살의 스토피라가 홈팀에 세 번째 골을 선물할 때 임무는 완벽히 수행됐다. 팀은 마치 그들이 득점을 한 것처럼 그를 축하해줬다. "저희는 그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는 돌아왔고 저희에게 좋은 분위기와 에너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모레이라가 말했다.

 

그는 옷과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 의류를 벗어던졌다. 심판은 스토피라가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기까지 그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10분 정도를 서 있었다. 아무도 그 순간 그가 경고를 받았다는 것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저는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합니다. 모두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모레이라가 또한 말했다. 

 

지토 데 피냐씨는 보스턴에서 프라이아로 중요한 경기를 보기 위해 넘어왔다. 메사추세츠는 많은 카보베르데 사람들의 집과 같은 곳이고, 그는 크리올로 스포츠라는 고국의 스포츠 소식을 다루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같은 비행기에 5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저는 이 순간을 위해 여기 있어야 했어요." 그는 말했다.

 

그는 내가 월드컵 진출이 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대단한 스포츠적인 성과인지를 물어봤을 때 나를 당연한 걸 굳이 묻는다는 듯이 쳐다봤다. 마치 성인 어른에게 그들이 숫자 5까지 셀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나오는 반응과 비슷했다. 

 

그는 나에게 유머를 날렸다. "우리는 농구 월드컵과 핸드볼 월드컵을 나가봤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제낄 수 있다."

 

율리우스라 불리는 팬은 더 나아갔다. "카보베르데에서 일어난 최고의 일들일 겁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요!"

 

경기 전 비하인드

 

하지만 여기 사실이 숨겨져 있다. 전반전의 긴장 상태에도 불구하고, 경기 전에는 모두가 긴장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경기 당일 날 아침에, 당신은 선수들이 해변에서 하루 동안 놀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크게 웃었고 누군가의 핸드폰으로는 무언가에 대해 가벼운 논쟁이 있었지만, 긴장감은 없었다.

 

아마 이것은 감독 부비스타에 의해 그들에게 점진적으로 자리 잡혔던 태도일 것이다. 그는 어시스턴트 코치부터 시작하여 경력의 전부를 카보베르데에서 보냈고, 어린 시절 그의 이야기를 특별한 용기를 낼 필요 없이 말할 수 있는 멋있는 삼촌 같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에스와티니를 상대하면서 청바지 차림으로 경기장의 터치 라인을 돌아다녔다.

 

경기 하루 전에, 부비스타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이 경기가 그의 생애 가장 큰 경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잠깐의 멈춤 뒤에, 질문한 사람을 쳐다보며, 옅은 웃음을 띠었고, 그의 옆에 있던 공격수 라이언 멘데스는 웃음을 참았다. 이 대답은 그가 줄 가장 쉬운 것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길게 말했지만, 말의 요지는 음, 물론 그렇죠라는 것이었다.

 

경기 이틀 전에 디 어슬레틱에게서 선수단이 압박을 느끼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저희에게는 특별한 것입니다." 윙어인 개리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이걸 즐기고 잡아내야 해요."

 

아침 식사 때, 몇몇 선수들은 루카스라 불리는 어린 친구가 선수들을 위해 그렸던 포스터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포스터는 그가 선수단에 있는 모든 선수들과 행운을 비는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었다. 선수들 중 한 명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아침 식사하는 자리로 가지고 갔다.

 

경기 전 저녁에, 선수단 전체는 내셔널 스타디움 근처의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Avenue Cidade de Lisboa의 시장에서 짧은 산책을 했다. 약간 혼란스러웠으나, 꽤나 무덤덤해보이는 두 명의 경호원들이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한 여자가 앞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와서 미드필더 야닉 세메도에게 큰 포옹을 했을 때 걱정은 거의 사라졌다.

 

박수 갈채와 격려의 함성이 있었고, 모든 곳에 셀카 행렬이 이어졌다. 두 어린 소년들은 동시에 셔츠를 벗어서 머리 위로 흔들어댔다. 한 여자는 2미터 넓이의 카보베르데 국기를 사진작가와 두 명의 일행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던 구스토씨와 함께 휘날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실을 만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이 팀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선수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다가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루카스는 호텔 안을 돌아다니면서 포스터를 어떠한 문제 없이 줄 수 있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이 선수들은 적어도 이번만큼은 한 국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성공 비결

 

카보베르데의 성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축구 협회는 그들과 떨어져 있는 외지 국가에서 선수를 수급하기 위해 체계적인 노력들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들이 독립되기 전, 섬으로부터 폭넓은 이동이 있었다. 이 사실은 전세계의 구석에 카보베르데 사람들이 작게나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축구팀이 피어올랐다. 에스와티니와의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포르투갈,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카보베르데에서 태어났다. 미국에 있는 모레이라부터 이스라엘의 알리송 타바레스, 아일랜드의 로페즈까지, 25명의 선수들은 15개의 다른 나라의 팀에 소속되어 있다.

 

카보베르데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후이 코스타는 디 어슬레틱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라고 말한다. "17세 이하의 팀들도 잘하고 있고, 여자 대표팀은 아프리카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철학을 가지고 뛰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어린 선수들에게 철학을 전파하는 것이죠. 지금은 모두가 카보베르데를 위해 뛰고 싶어해요."

 

그들은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본선에 네 번 진출했고 지난 대회에서는 코트디부아르에서 8강까지 올라갔다. 예선을 망치고 나서 모로코에서 이번 년도 이후에 열릴 다음 대회에는 놀랍게도 참여하지 못하게 됐지만, 과정은 분명히 잘 진행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세계 랭킹은 182위였다. 이제 그들은 70위에 있다. 그리고 다음 번 순위가 계산될 때는 더 높아질 것이고, 한때는 27위까지 올라선 적도 있다.

 

피파로부터 제공받은 돈은 그들이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는 걸 도와주었고, 중국으로부터의 투자는 에스와티니에게 승리를 따낸 장소인 내셔널 스타디움을 짓게 도왔다. 

 

경기장은 트랙이 있는 그릇 모양의 경기장이고, 프라이아 시내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자금의 출처 때문에, 경기장에 있는 많은 표지판은 포르투갈어나 크레올리어가 아닌, 영어나 중국어로 되어 있다.

 

펠레가 2022년 12월에 사망했을 때, 카보베르데의 국무총리인 율리세스 코헤이아 에 실바는 경기장의 이름을 위대한 브라질인을 기리며 다시 짓기로 했는데, 모든 나라가 최소한 하나의 경기장을 펠레의 이름을 따야 한다는 자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의 약간은 생소한 제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후 펠레가 카보베르데에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경기장의 이름은 내셔널 스타디움으로만 지어졌다.

 

로베르토 피코 로페스는 이번 주 엄청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물론 월드컵 진출이 가장 큰 일은 아니다. 2019년에 링크드인 메시지를 통해 국가대표팀 차출 제안을 받은 걸로 유명했던 그는 처음에 스팸메시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와이프 레아는 며칠 뒤에 첫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경기 후에 빠르게 공항으로 달려갔고, 세리머니의 거의 대부분을 빠지면서 그는 아이의 탄생 과정에 함께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밤새 날아갈 수 있었다.

 

"축구는 제 마음 속의 1순위는 아닙니다." 그는 경기 이틀 전에 디 어슬레틱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임박한 것이 그가 압박에 대처하는 것을 도와줬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는 압니다만 제 동기부여는 일을 잘 마쳐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고 첫 아이의 탄생을 희망차게 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하는 월드컵이 첫 가족 휴가보다 중요할까요?"

 

게다가, 그의 소속팀 샴록 로버스는 금요일 날 세인트 패트릭스 어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최근 5년 중 4번째로 아일랜드 리그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로페스가 프라이아에서 에스와티니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지난 금요일에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1-0으로 셸본에게 졌다. 로페스가 그 게임을 알고자 했던 어플리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그는 친구에게 페이스타임을 했고 그들에게 TV 앞에 핸드폰을 놓아보라고 했다.

 

피코는 아버지가 카보베르데 사람이었기에 국가대표팀 차출 자격이 있었다. 섬에는 여전히 그의 친척들이 많이 있다. 이모, 삼촌, 여러 명의 사촌과 98세의 나이에 여전히 가족 농장에서 일하는 할아버지까지. "그는 요즘에는 무거운 것을 잘 들어올리지 않지만, 여전히 손가락으로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합니다."

 

성인이 되면서, 그는 그의 유산에 대해 잘 몰랐고 거기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았기에 이야기하기가 당황스러웠다는 걸 인정했다. 국가대표팀으로 뛴 것은 그 모든 걸 바꿔놓았다.

 

"저는 문화, 사람들, 음악, 음식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카보베르데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러한 경험을 나누는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매일 저는 조금씩 제가 카보베르데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들은 지난 주 월드컵 진출에 매우 가까워져 있었다. 그들은 당신이 볼 법한 골키퍼가 한 최악의 실수 중 하나와 윌리 세메도의 골을 묶어 3-3으로 비기기 전까지 리비아에 3-1로 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미로 몬테이로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홈팀을 박살내는 득점을 했을 때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고 생각했으나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고, 득점과의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짓는 것은 홈에서 이룬 것만큼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 후, 선수들은 친구들, 친척들, 영광의 순간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날아온 사람들과 함께 즐겼다. 로테르담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리브라멘토는 15명의 사촌이 이 경기를 보러 왔다.

 

부비스타 감독이 자리에 모인 매체로부터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선수들이 나타나서 그에게 액체를 적셔댔다. 그 중 적어도 하나는 혼란함 속에서 그가 본 것은 맥주였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팀 버스에 모였고, 그 안에서 춤을 추면서 말 그대로 버스는 들썩였다. 앞쪽에서, 부비스타 감독은 그들이 다른 버스들에 의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방해되다 보니 분명 거기에 화가 났을 것이다. 

 

이번 주 내내, 모든 선수들은 스피커 주위에서 말을 할 차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건물을 무너뜨릴 것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주 초에 카보베르데와 다른 서아프리카의 음악가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선수단이 호텔로 돌아가려 할 때, 누군가가 마이크로폰을 가져와서, 선수들은 차례로 동료들에게 할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축하 파티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팀의 숙소에서 도로를 따라가면 있는, 오래된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DJ와 라이브 음악이 동반된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브뢰더리프되라는 그룹에 속해 있는 네덜란드인 래퍼, 리브라멘토의 친형이 있었다.

 

카보베르데 축구협회 본관에는, 과거의 대표팀을 담은 그림들 옆에, 국가대표팀의 역사가 담긴 중요한 물건을 보여주는 진열장이 있다. 가장 주목도가 있는 물품 중 하나는 올해 초에 조지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받았던 배너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 트로피 진열장에는 더 빛나는 장식품들이 몇 개 추가될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은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카보베르데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모레이라가 말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봐줬어요. 저는 그들에게 역사를 만들어주게 되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6,291 / 423 페이지
RSS
번호
포토
제목
이름
벳프라임 최근글
알림 0
베팅 슬립 0
선택된 경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