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레전드인 테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결승골이 될 수도 있었던 킥을 차다 미끄러지며 실축했고, 결국 맨유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아넬카도 실축했지만, 모스크바에서의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테리의 미끄러짐이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현재 45세인 테리는 팟캐스트에서 당시 팀이 머물던 호텔 25층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동료들이 그를 발견해 아래층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경기 후 모두 호텔로 돌아갔는데, 모스크바의 25층에서 창밖을 보며 계속 ‘왜? 왜?’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실제로 뛰어내릴 기회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랬을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엔 정말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슥니다.”

 

이어 그는 말했다.

 

“그런데 동료들이 올라와서 나를 데리고 내려갔어요. 그런 순간에는 ‘만약에....’라는 생각이 들죠.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잖아요.”

 

테리는 며칠 뒤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의 고통도 떠올렸다.

 

“3~4일 후에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식탁 맞은편에 맨유 선수들이 앉아 있었어요.

 

그 자체로도 최악이었죠. 그러다 웸블리에서 미국과 경기했는데, 내가 헤더로 골을 넣었어요. 

 

그 순간 ‘왜 이 골이 아니라 그 페널티를 바꿀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그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선수 시절에는 매 경기, 매 시즌을 치르다 보니 그 기억을 마음속 깊숙이 밀어 넣고 버텼어요.

 

그런데 은퇴한 지금은 매주 경기를 뛰거나 팬들 앞에서 느끼는 그 긴장감과 집중이 없으니,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한밤중에 깨서 ‘아, 그 일이 정말 있었지’ 하고 떠올리기도 해요.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겁니다.”

테리는 당시 큰 충격을 받은 채 공개 서한을 통해 팬들에게 사과했고, 결승전 이후 며칠간 거의 잠도 못 자며 그 장면을 계속 떠올렸다고 밝혔다.

 

4년 뒤 첼시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테리는 마침내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다만 그는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에서 퇴장당해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인터뷰는 테리가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직접 밝힌 첫 번째 사례다. 그는 당시 첼시의 수석코치였던 레이 윌킨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레이 윌킨스는 정말 큰 존재였어요. 그 경기가 끝난 직후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제 상태를 확인해 준 사람이었죠. 그때 누가 진짜 친구인지, 누가 정말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축구계에서 진짜 친구는 많지 않지만, 어려운 순간에 남는 사람들은 확실히 기억에 남아요.”

 

윌킨스가 2018년 세상을 떠났을 때, 테리는 그를 “곁에 두기만 해도 큰 힘이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실축의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느냐는 질문에 테리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버티고 살아가는 거죠. 나는 아버지 세대의 방식으로 자랐어요. 

 

힘들다고 하면 한 대 맞고, 다시 일어나서 버텨야 하는 분위기였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가장 거친 상대에게 부딪히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그 변화는 축구에 있어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