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Vfans] 허정무: 크루이프와 판 하네험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PSV 출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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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V 역사에서 박지성과 이영표는 잘 알려진 한국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앞서 1980년 아시아에서 에인트호번으로 건너온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허정무다. 그는 70번째 생일을 맞았다.
허정무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팀에서 활약했으며, 1974년 여름 영등포고를 떠났다. 연세대학교에서 4년간 뛰고 난 뒤 한국전력축구단(현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KHNP)에 입단했고, 1978년 여름부터 2년간 해병대 팀에 임대돼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1980년 여름 유럽으로 건너가 PSV에 입단했다.
미드필더 허정무는 1980년 8월 28일 덴하흐를 상대로 PSV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경기 종료 약 15분을 남기고 아드리 코스터 대신 교체 투입되며 PSV와 에레디비시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가 됐다. 당시 PSV는 홈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에인트호번에서의 첫 시즌에 허정무는 공식전 34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허정무는 중원에서 거칠게 압박하는 ‘파이터형’ 선수였고, 그의 성씨 덕분에 빠르게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필립스 스타디온의 관중석에서는 “허, 허, 허(후, 후 ,후)”라는 응원이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큰 경기일수록 그는 더욱 날카로웠고, 상대를 철저히 봉쇄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 결과 첫 시즌부터 빌럼 판 하네험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더 크롬메(De Kromme, 곡선의 마술사)’로 불리던 판 하네험(역주: 네덜 레전드, 74월드컵 준우승&페예노르트로 챔스우승)은 1980/1981시즌 FC 위트레흐트 소속으로 1981년 4월 20일 PSV와 맞붙었다. 허정무는 전반 30분 부상당한 빌리 판 데르 카윌런 대신 투입돼 판 하네험을 밀착 마크했다. 그 강도는 판 하네험이 자제력을 잃을 정도였고, 결국 그는 허정무의 얼굴을 밀쳤다. 이어 몇 가지 제스처로 PSV 선수를 조롱하기도 했다.
요한 크루이프 역시 허정무의 집요한 수비를 몸소 경험했다. 1982년 4월 18일 PSV는 암스테르담 올림픽 스타디온에서 아약스와 맞대결을 펼쳤고, 이 경기는 양 팀 모두에게 리그 우승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당시 PSV의 주전 감독 타이스 리브레흐츠는 크루이프 전담 수비수로 허정무를 지목했다.
리브레흐츠 감독은 허정무가 아시아 출신으로 상대의 ‘명성’에 덜 위축될 것이라 판단해, 네덜란드 축구의 아이콘인 크루이프를 따라다니기에 적임자라고 봤다. 허정무는 경기 내내 크루이프를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말 그대로 경기장 전역을 쫓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허정무는 크루이프에게 몇 차례 거친 태클을 가했고, 이는 크루이프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전반이 끝난 뒤 크루이프는 츠허우 라 링과 교체됐는데, 훗날 그는 이 교체가 허정무 때문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유는 ‘너무 미끄러운 공’이었다는 것이다.
허정무는 PSV에서 총 3시즌을 조금 넘게 뛰었다. 공식전 93경기에 출전해 13골과 7도움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한 골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데, 1982년 그가 에레디비시에서 PSV의 통산 1000번째 홈 골을 기록한 주인공이 됐다.
1984년 1월 허정무는 한국으로 돌아가 현대 호랑이(현 울산 HD)에서 뛰었다. 같은 팀 소속으로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이 대회에서도 그는 스타 선수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A조에서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와 한 조에 편성됐고, 1무 2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허정무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전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가 출전해 더욱 특별한 경기였다.
마라도나 역시 전 PSV 미드필더 허정무의 거친 플레이를 피하지 못했다. 허정무는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를 강하게 압박하며 몇 차례 거친 태클을 가했다. 하지만 결과까지 만들어내지는 못했고,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3-1 승리로 끝났다.
1987년 1월 허정무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잠시 축구계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곧 지도자로 돌아왔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석코치와 감독을 맡았고, 이후 한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여러 차례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중 하나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다. 당시 한국은 다시 한 번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속했고,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활약하던 한국은 이 경기에서도 마라도나의 팀에 패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허정무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았고, 이후 대전 시티즌, 경기도축구협회, K리그, 대전하나시티즌 등에서 여러 행정·보직을 수행했다. 2024년 11월에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결국 허정무에게 한국 밖에서의 유일한 소속팀은 PSV였다. 그는 빌리 판 데르 카윌런(닉네임 미스터 PSV, PSV 상징과도 같은 선수) , 호마리우, 호나우두처럼 PSV의 전설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크루이프, 판 하네험, 마라도나 같은 거물들에게 적잖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안겨준 선수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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