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애슬레틱] 잔니 인판티노는 누구인가? FIFA 회장이자 ‘축구의 왕’(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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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3_Infantino-scaled.jpg [디 애슬레틱] 잔니 인판티노는 누구인가? FIFA 회장이자 ‘축구의 왕’(장문)

by: Oliver Kay
 
2025 FIFA 클럽 월드컵을 생중계 중인 디 애슬레틱(The Athletic) 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판티노를 둘러싼 수십 명과 인터뷰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세등등했다. “놀라워요.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에 어린아이가 일어나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본 것처럼 신난 모습이죠. 저런 열정은 대단히 잘 통합니다, 정말이에요.”
 
잔니 인판티노는 머리를 젖히며 웃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몇 달 전 백악관에서 열린 2026 월드컵 준비 태스크포스 출범식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인판티노를 “나의 훌륭한 친구”이자 “일종의 축구 왕… 어느 정도는 말이죠”라고 표현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FIFA 회장으로서, 인판티노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이다. 32개 팀이 참가하는 클럽 월드컵, 48개국이 나서는 월드컵 같은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현실이 된다. 그는 전용 카타르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스포츠 스타들과 국가 정상들을 만나고, 이런 활동을 3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과 공유한다. 종종, 트럼프의 묘사처럼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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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엔 이렇게 적혀 있다:
“축구를 살아가며, 축구를 통해 세상을 하나로 만들고, 축구를 진정한 세계적 스포츠로 만드는 중입니다.”
요즘 그는 FIFA를 “인류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공식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위스 언론에서는 그를 ‘축구계의 태양왕’이라고 부른다. 루이 14세처럼 허영에 찬 절대 권력을 연상시키는 별명이다.
 
그의 이름은 티파니(Tiffany & Co.)에서 제작한 새로운 클럽 월드컵 트로피에 두 번 새겨져 있다. 소수의 전담 인력이 항상 그를 따라다니며 SNS 콘텐츠를 만든다. ‘인판티노 브랜드’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알렉산더 체페린이 한 기자회견에서 날렸던 말이 떠오른다.
“어떤 축구 행정가도, 아무리 자아가 크더라도, 우리가 경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 모습은 그가 챔피언스리그 추첨 무대에 올라 “갈라타사라이… 터키 챔피언, 1989년 준결승 진출팀이죠” 같은 형식적인 멘트를 하던 UEFA 시절, 딱딱하고 웃음기 없는 관료로 알려졌던 시절과는 너무도 다르다.
 
10년 전만 해도 아무도 그를 FIFA 회장감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부패 스캔들로 세프 블라터 체제가 무너지자, 인판티노는 기회를 잡았다. UEFA 동료들조차 그가 어떻게 권력을 움켜쥐고, 그에 익숙해졌는지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진짜 잔니 인판티노는 누구일까?
 
그는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민자 부모 아래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딛고 FIFA의 수장을 차지한, 정직한 개혁가인가?
아니면 개혁을 외치며 권력을 얻은 뒤, 축구를 또다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얽힌 공으로 만들어버린 마키아벨리식 권력 추구자인가?
 
그가 애정을 쏟아온 32개 팀 클럽 월드컵이 이번 주말 마이애미에서 시작된다. 티켓 판매 부진과 선수 피로도 문제 속에서 디 애슬레틱 은 전·현직 FIFA 관계자 수십 명과 인터뷰하며 그의 실체를 파헤쳤다. 일부는 “천재”라며 칭찬했고, 일부는 “속 빈 강정”이라 혹평했다. 어떤 이들은 공개 인터뷰를 했지만, 많은 이들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익명을 요청했다.
 
스위스 알프스의 고향 브리그글리스(Brig-Glis)를 직접 찾아가, 그의 가족을 포함한 현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려진 인물상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UEFA 시절 함께 일했던 이들조차 “지금의 지아니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모습이 진짜 잔니인지, 아니면 이 일을 9년 하면서 그렇게 변한 건지 모르겠다”는 회고도 있다.
 
다만 모두가 인정하는 건 그의 열정이다. 트럼프가 언급했던 바로 그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 축구선수들과, 세계 정상들과 어울릴 때에도, 그 눈빛은 여전히 반짝인다.
이름처럼, 인판티노(Infantino), 마치 어린아이처럼.
 
‘피콜로’, 작은 아이
 
잔니 인판티노는 세 자녀 중 막내로 1970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 건강 문제가 있어 수혈이 필요했다. 2016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살린 피는 영국 브리스톨과,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에서 온 기증자들이 준 것입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과 세르비아의 피를 수혈받고 살아났지만,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느끼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 빈첸초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출신, 어머니 마리아는 동북부 롬바르디아 산악지대 출신이다. 두 사람은 알프스 아래 도시 도모도솔라에서 살다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다.
 
도모도솔라는 알프스 아래 심플론 터널의 이탈리아 쪽 출구다. 그 반대편에는 그림 같은 스위스 마을 브리그글리스가 있다. 인판티노의 사촌 다니엘 넬렌은 이렇게 회상했다.
“여긴 어릴 때부터 국제적인 감각을 갖게 되는 곳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세계’라는 걸 알게 되죠.”
 
 
스위스에서의 새 삶은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지역 출신 이민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스위스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느꼈어요,”라고 인판티노의 사촌 넬렌은 브리그에 있는 자신의 미용실에서 『The Athletic』에 말했다. “잔니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었죠. 그게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진짜 문제는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이었죠.”
 
인판티노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 전날 했던 논란의 “오늘 나는…” 연설에서 이런 차별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차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를 가두고, 방으로 들어가서 울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브리그 지역 기준으로는 가난한 편이었다. 아버지 빈첸초는 야간 열차 서비스에서 일했다. “3일 일하고, 가서 하룻밤 머문 뒤 돌아왔어요,” 넬렌은 말한다. “쉬는 날에는 지안니 어머니와 함께 역의 키오스크에서 신문과 담배를 팔았고, 다시 로마, 파리, 브뤼셀로 가는 열차를 탔죠.”
 
넬렌은 인판티노의 지능이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한다. “잔니는 공부를 너무 쉽게 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를 펼쳐보는 거였어요. 경기 결과, 시합 내용… 스포츠, 스포츠, 축구, 축구, 축구였죠.”
 
잔니는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인터밀란을 응원했고, 에바리스토 베칼로시와 알레산드로 알토벨리를 우상으로 삼았다. 그의 축구 실력은 FC 브리그-글리스 3군 수준에 그쳤지만, 사촌 넬렌의 말처럼 “그는 뭔가를 조직하고, 후원을 받고, 유니폼을 챙기는 걸 좋아했어요.”
 
그의 축구 행정과 정치에 대한 관심은 꽤 이른 시기에 드러났다. 그는 2세 이민자들로 구성된 ‘폴고레’라는 팀을 FC 브리그-글리스와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구단 회장과 이사진을 설득해 통합에 찬성하게 만들었어요,”라고 넬렌은 말한다. “20살짜리가 FIFA 회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지안니는 ‘내가 축구 선수가 될 실력이 안 된다면, 축구 선수의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항상 그의 생각은 ‘축구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거였죠.”
 
FIFA의 121년 역사에서 단 9명만이 회장직을 맡았다. 그런데 그중 마지막 두 명이 불과 10킬로미터 거리에서 태어났다는 건 놀라운 우연이다.
 
비스프 출신의 블라터와 브리그 출신의 인판티노는 다른 세대이며 학문적 배경도 달랐다. 블라터는 로잔대학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인판티노는 프리부르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스포츠 단체가 밀집한 스위스에서 행정가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콘은 이를 “스포츠 행정의 스위스 엘리트 코스”라고 표현했다.
 
인판티노는 스위스 뇌샤텔에 있는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에서 법률 고문 및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FIFA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FIFA 본부에서의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30세가 된 그는 CIES에서 2년을 보낸 뒤 UEFA 법무팀에 입사했다. UEFA의 전 브랜드 매니저 댄 오툴은 그를 “예의 바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동료”로 기억한다. “초반에는 조용했어요. 수줍음은 없었지만, 그냥 말수가 적었죠.” 한 영국 축구 행정가는 당시 인판티노를 처음 보고 “짐 나르는 사람 중 하나인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인판티노는 회의나 고위 인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완전히 달라졌다. “공항에서 UEFA 집행위원들 틈에 서서 5~6개 언어로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고 충격받았어요,”라고 오툴은 말한다.
 
UEFA 내에서 인판티노의 입지는 미셸 플라티니 회장 아래에서 급상승했다. 오툴은 “정말 빠르게 승진했다”고 말한다. 2010~2015년 잉글랜드 축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알렉스 혼도 “그는 공손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동시에 재치도 있었고요”라고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독일이 다른 걸 원하고, 잉글랜드가 다른 걸 원할 때도 그는 타협안을 잘 찾아냈죠.”
 
그러나 플라티니는 인판티노의 경기 규정에 관한 의견은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예를 들어 인판티노는 VAR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반면, 플라티니는 끝까지 회의적이었다.
 
플라티니가 블라터의 후계자로 유력했던 당시, 인판티노의 최선은 그저 보조적인 자리였다. 하지만 2015년 여름, FIFA가 대규모 부패 스캔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플라티니가 FIFA 회장이 될 것이 유력했고, UEFA의 차기 수장은 독일 축구협회장인 니어스바흐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인판티노의 입지는 위태로워졌다.
 
그해 9월, 스위스 검찰은 플라티니가 FIFA로부터 받은 200만 스위스프랑(약 24억 원) 지급 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이는 “FIFA에 불리한 거래”라는 판단이었다. 이후 플라티니와 블라터는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FIFA 윤리위는 두 사람에게 8년 자격 정지를 내렸고, 항소 후 6년으로 감형되었다.
 
인판티노가 FIFA 회장 출마를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플라티니의 이름을 되찾을 때까지의 ‘임시 대리인’으로 여겼다. 그러나 2016년 2월 선거가 다가올수록, 그의 야심은 진짜임이 분명해졌다.
 
“그는 정말 모든 나라를 돌며 캠페인을 펼쳤어요,”라고 당시 잉글랜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그렉 다이크는 말한다. “그가 탄 항공편 이야기, 여행 이야기까지 유쾌하게 풀었죠. 나는 그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FIFA에서 그를 좋아했어요. 그는 정직하고 뛰어난 조직가였죠. 국제축구계엔 정직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인판티노는 정직하다고 느꼈어요.”
 
그의 캠페인 출발점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이었다. 그는 무리뉴, 카펠로, 피구, 세도로프, 카를로스 등 유명 감독과 스타 선수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상류층 인맥을 과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FIFA 대의원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한 건 개혁 공약이 아니라, “FIFA의 수익 배분 확대” 약속이었다. 그는 회원국들에게 향후 4년간 500만 달러(약 67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FIFA의 돈은 여러분의 돈입니다,” 그가 마지막 연설에서 외친 이 말은 개혁이나 투명성보다 훨씬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 돈이 FIFA 대회를 확대함으로써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자 월드컵을 40개국(후에 48개국으로 수정), 클럽 월드컵을 32개 팀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이었다. 대회가 커지면 방송사·스폰서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미 과도한 일정 속에서 선수들의 피로에 대한 우려는 쉽게 무시되었다.
 
결과가 발표되고 당선이 확정되자, 인판티노는 눈을 감고 손을 모은 뒤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FIFA의 이미지를 회복할 것입니다. FIFA의 존경을 되찾을 것입니다. 전 세계가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블라터와 그가 이끌던 FIFA 체제에 대해선 별다른 존중이 없지만, 흔히 들리는 말 중 하나는 그가 일종의 구식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후임자인 인판티노는 여유 있는 인사말조차 생략할 만큼 바쁜 ‘성급한 남자’로 묘사된다. 인판티노는 일부 직원들과는 가까운 사이지만, FIFA 취리히 본부의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가 자주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 회원국을 방문하거나, FIFA의 파리, 마이애미, 싱가포르 사무소를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이를 현대 직장 내 전형적인 모습으로 본다. 위만 바라보며 끊임없이 오르려는 데에 집착한 나머지, 아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관리자형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판티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묘사에 반박한다. 네 자녀를 둔 기혼자인 그는 매우 예의 바르며, 직원들의 안부와 가족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갖고 묻는다고 한다. 특히 축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가장 편안해 보인다. 친구나 동료들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이야기하거나, 2023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축구평의회(IFAB) 회의 차 방문했을 때 갑작스레 밀월과 노리치 시티의 경기를 보러 가는 등, 즉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의 집착은 단지 축구 그 자체가 아니라, 축구 정치에도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전해진다. 한 축구 행정가는 “그가 책이나 영화, 다른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이 역할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했다.
 
인판티노의 성격이 FIFA 내부에서 갈등을 낳고 있다는 점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그를 “빨간 유형의 성격”이라고 묘사한다. 즉, 요구가 많고, 의지가 강하며, 단호하고, 역동적이고, 빠르게 움직이며, 결과 중심적이고, 행동 지향적인 사람이다. 회의 중 우물쭈물하거나 말이 길어지면 곧바로 간단히 잘라버린다. “그는 헛소리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종종 링크드인에 등장하는 냉혹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집요하고 목표지향적인 기업 리더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UEFA 시절 그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그를 알던 한 동료는 지금의 ‘빨간 유형’ 요소가 존재했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파란 유형’—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성격—으로 여겨졌다고 회상한다. 물론 그에게는 뛰어난 업무 집중력, 야망, 정치 감각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이를 과소평가했다고도 한다.
 
“당시만 해도 인판티노가 FIFA 회장이 되려는 강한 야망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가 포커의 고수였고, 제가 속은 걸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가 거의 우연히 회장이 된 것처럼 보였어요.”라고 데이비드 혼은 말한다.
 
2016년 인판티노가 FIFA 회장에 당선된 직후, 그의 누나 다니엘라는 스위스 신문 Der Bund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우 섬세하고 조화로운 사람이며, 지금도 매일 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그가 회장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세상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가 출세를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기자 토마스 렝글리는 인판티노가 “항상 한 수 앞서 있었다”고 평가한다. “아무도 그가 이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아주 영리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체스를 두듯이, 킹과 퀸이 판에서 사라진 후, 갑자기 지아니가 그 자리에 등장한 거죠.”
 
올해 4월, 미국 법무장관 팸 본디와 FBI 국장 캐시 파텔 등 고위 인사들이 마이애미 외곽 코럴 게이블스에 위치한 FIFA 새 사무실을 찾았다. 클럽 월드컵과 미국에서의 월드컵 개최 관련 논의 속에서, 인판티노와 FIFA는 이 회담이 지닌 상징성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는 3년에 걸친 FBI 수사 끝에 취리히 바우어 오 락 호텔에서 FIFA 고위 간부 7명이 체포되었던 과거와의 뚜렷한 대조였다.
 
인판티노가 회장직을 맡을 당시 FIFA는 부패의 대명사였다. 당시 FBI 국장이었던 제임스 코미는 “은밀한 뒷돈과 뇌물 수수가 비즈니스의 일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FIFA는 지난해 말 “부패한 조직에서 존경받는 현대적 기구로 탈바꿈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인판티노는 회장 취임 불과 한 달 만에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름이 등장했다. UEFA 재직 시절 한 역외회사와 맺은 중계권 계약이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것에 대해 “매우 당황스럽다”며 “언론 일부가 나를 근거 없이 의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UEFA 측은 “공개 입찰을 거친 절차였다”고 해명했다.
 
2020년에는 또 다른 수사가 제기됐다. 인판티노와 스위스 전 연방검사 미하엘 라우버, 그리고 인판티노의 친구인 지방검사 리날도 아놀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관련된 혐의였다. 이 수사는 2023년 최종적으로 무혐의로 종결되었으며, 인판티노는 “FIFA와 정의,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완전하고 명백한 승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질투 많고 부패한 사람들이 나를 음해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FIFA 자체 윤리위원회 역시 2017년 인판티노가 러시아와 카타르에서 제공받은 전용기를 이용한 일에 대해 이해충돌 여부를 조사했다. 또 2016년에는 집에 두기 위한 매트리스, 운동기구, 꽃 등의 사적 지출을 FIFA에 청구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안 모두 윤리 규정 위반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2011년 FIFA 개혁을 위해 구성된 독립 거버넌스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마르크 피에트는, 2016년 5월 FIFA 총회에서 FIFA 평의회가 모든 독립 위원회 구성원을 임의로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인판티노 체제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에 순응하길 거부한 컴플라이언스 위원장 도메니코 스칼라는 24시간 이내에 사임했고, 인판티노는 스위스 언론에 “유치한 행동이며 유치원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FIFA 윤리위원회 심사 부서의 한스 요아힘 에커트 판사와 조사 부서의 코르넬 보르벨리 수사관도 재계약되지 않았다.
 
“윤리위원회의 독립성이 유지되었다면, 누구든 코드 위반이 확인되면 두려움 없이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에커트는 2025년 5월 The Athletic에 이메일로 전했다.
 
FIFA는 위원들의 결정을 항상 존중해 왔으며, 어떤 절차에도 부당한 영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2016년에는 독일 신문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유출된 녹음 파일에서, 인판티노가 200만 스위스프랑(약 30억 원)의 연봉 제안을 “모욕적”이라 표현한 내용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그는 “적들이 나를 탐욕스럽게 보이도록 꾸미고 있다”며, “이런 이론들은 입증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봉은 이후 두 배 가까이 인상되어 현재는 약 500만 달러에 달한다.
 
 
인판티노가 2031년까지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럴 경우 그의 재임 기간은 총 15년에 이르게 된다. 이는 FIFA가 2016년, 회장직을 최대 세 번의 4년 임기로 제한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2022년, 인판티노는 FIFA 평의회가 그의 첫 임기를 ‘정식 임기’로 간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블라터의 후임으로서 첫 임기를 3년만 수행했기 때문에, 3회 임기 제한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이었다.
 
그와 가까이 일했던 한 고위 축구 행정가는 인판티노의 “상당한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FIFA 회장직 수행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이런 스포츠 지도자들은 왕족처럼 대접받고, 결국 그게 머리에 올라가요.” 그 행정가는 말했다.
“마치 중세 궁정에서 사는 것 같고, 제왕적인 행동이 오히려 보상받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 FIFA는 “투명성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거버넌스와 재정 개혁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며, 이는 여러 기관에서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신뢰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 조직은 애초에 개혁을 원한 적이 없어요.” 마르크 피에트는 말했다.
“개혁을 말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개혁하고자 한 적은 없었죠.”
 
에커트 역시 강하게 비판한다.
“그(인판티노)가 의회에서 연설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립니다.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이며, 부패는 척결되고, 축구는 깨끗해질 것이다.’
그게 그가 선출된 이유였죠.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고 싶지 않네요.”
 
2024년 5월 15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CONMEBOL 컨퍼런스 센터.
제75차 FIFA 총회가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고, 210개 회원국 대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주최자인 인판티노는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대표자들은 총회 시작이 3시간 연기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예기치 못한 사정”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인판티노는 당시 도하에서 출발한 카타르 전용기 안에 있었다. 그는 전날까지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카타르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와 함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국빈 만찬 및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도착했지만, 지연에 대해 사과하며 “FIFA 회장으로서, 나는 조직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항공편에 문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UEFA 회장 체페린을 포함한 유럽축구연맹 이사회 인사 8명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UEFA는 성명을 통해, “회의 일정이 단지 개인적인 정치 일정에 맞추기 위해 막판에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인판티노에게 있어 굴욕적인 사건이었고, 그가 트럼프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을 더욱 키웠다.
 
지난달, 인판티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트럼프는 2026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캐나다, 멕시코와의 긴장 상태가 “경기를 더 흥미롭게 만들 것”이라며 “긴장은 좋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인판티노는 웃으며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한 트럼프의 취임식에서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는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한 반응은 FIFA 이사회 내부에서도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사우디에 가면서, 동료들이 기다리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아요.”
피에트는 말했다.
“사람들을 세 시간 동안 기다리게 만든 거죠. 그는 이제 완전히 자만에 빠졌습니다.”
 
FIFA 내부에서는 이를 ‘현실 정치(Realpolitik)’라고 표현하며, 인판티노가 트럼프, 사우디, 카타르 같은 권위주의 정권과의 관계를 철저히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판티노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다가오는 월드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표현했고, 2034년 대회를 염두에 두고 사우디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해석했다.
 
최근 사우디 왕세자 앞에서 여성 축구 투자 중요성을 강조한 연설도 있다.
사우디 여성 국가대표팀이 처음 경기를 치른 게 202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FIFA 내부에서는 인판티노가 사우디 최고 권력층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사례로 여긴다.
 
하지만 사우디와의 관계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FIFA는 2034년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사우디에 길을 열어준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FIFA의 평가 보고서는 사우디의 인권 상황을 “중간(medium)” 위험으로 분류했으며, 이에 대해 휴먼라이츠워치는 FIFA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런던 소재 인권단체 ‘페어스퀘어(FairSquare)’가 주도한 35개 단체의 공동 성명은 FIFA가 “10년 전보다도 오히려 더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인판티노가 권위주의 정권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으며, FIFA 고위직에 다양성이 부족하고, 월드컵 개최국과 관련한 인권 침해 문제가 여전하다는 점을 예시로 들었다.
 
이에 대해 FIFA 사무총장 마티아스 그라프스트롬은 4월, 휴먼라이츠워치에 보낸 편지에서 사우디의 노동법 개혁을 언급하며, “FIFA는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제3자 고용 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책임지고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판티노는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와도 지나치게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카타르의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을 반복적으로 부정했다.
또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푸틴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과시했고, 러시아로부터 ‘우정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우리는 러시아의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4년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FIFA는 러시아를 모든 경기에서 무기한 출전 정지시켰다.
 
FIFA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카타르 항공, 사우디 공공투자펀드(PIF) 등으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 중 PIF는 최근 클럽 월드컵의 새로운 스폰서가 되었다.
GettyImages-1244954480-2-1-e1731857231196.jpg [디 애슬레틱] 잔니 인판티노는 누구인가? FIFA 회장이자 ‘축구의 왕’(장문)

런던의 마케팅 회사 피치(Pitch)가 이번 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FIFA는 2026년 월드컵까지의 4년 주기 동안 10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러시아 월드컵 전 주기(2014–2018년)의 수익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수익이 한 사이클 만에 두 배로 늘어난 건 엄청난 성과입니다.”
뉴질랜드 축구협회 CEO 앤드류 프래그넬은 말했다.
“특히 FIFA가 축구계 전반에 걸쳐 부를 재분배한 걸 보면, 인판티노는 그 부분을 정말 잘 해냈습니다.
물론 문제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성과 역시 실질적입니다.”
 
“서구 민주주의의 시각으로만 보면, ‘여긴 너무 관대해’, ‘이건 회피했네’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FIFA는 210개국이 모인 유엔 같은 조직입니다.
그 안에서 조율하며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완전히 평가할 수 없는 자리죠.”
 
“오늘 나는 카타르인입니다. 오늘 나는 아랍인입니다. 오늘 나는 아프리카인입니다. 오늘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오늘 나는 장애인입니다. 오늘 나는 이주 노동자입니다.”
 
2022년 월드컵 전날, 인판티노는 57분 동안의 연설을 했고, 그 시작은 억압받는 집단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하는 뜻밖의 내용이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자라며 ‘주근깨에 붉은 머리카락’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하며, 카타르에 대한 인권 비판은 이슬람 혐오 때문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이 연설은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어떤 축구 관계자는 “민망했다”고 회상하고, 다른 한 명은 “의사소통 측면에서 큰 실수였다”고 평했다.
하지만 FIFA 내부의 또 다른 인사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며 매우 용기 있는 연설이었다”고 말하며, 연설 후 인판티노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미디어팀 디렉터 브라이언 스완슨을 포옹한 장면을 언급했다.
 
그날 이후, 인판티노는 언론과의 접촉을 거의 끊었다.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댓글 기능이 꺼져 있고, 전통적인 총회 기자회견도 폐지됐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클럽 월드컵 홍보 행사들도 주요 언론의 접근 없이 진행되었다.
기자들이 마이애미에서 인판티노의 등장 소식을 듣고 모였을 때, 그들에게 보여진 것은 그가 등장하는 6분짜리 영상뿐이었다.
 
그가 최근 진행한 유일한 인터뷰는 스트리머 스피드와의 짧은 대담이었다.
인터뷰는 “메시 vs 호날두?”라는 가벼운 질문에서 시작해, 스피드가 뛰었던 자선경기 영상을 함께 보며 8분간 웃고 떠드는 내용이었다.
 
그 인터뷰의 의도는 젊은 팬층과 소통하고 클럽 월드컵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인판티노는 인터뷰 중 새 클럽 월드컵 트로피(그의 이름이 두 번 적혀 있다)를 공개하며, 그것의 ‘움직이는 기능’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꺼냈다.
“뭐야, 진짜 멋진데요.”
스피드는 놀라며 반응했고, 이는 몇 주 전 트럼프가 “와, 농담이지?”라고 말하던 반응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인판티노는 정말 편안해 보였다.
냉소 없는 축구 세계, 모든 발언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축구의 왕 같은 존재”로 불리는 세계에서 그는 완전히 자신의 영역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트럼프가 표현했듯, “매우 잘 먹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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